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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 벤처기업 잉크테크 정광춘 사장 | 월간중앙 | 1998-06-01 |
하늘이 무너져도 살아날 구멍이 있다. 국가 전체가 경제위기로 빈사상태에 빠져 있지만 기술력과 미래에 대한 안목만 있다면 살아날 수 있다. 한 분자공학박사의 성공은 이 명제가 거짓이 아님을 증명하고 있다. 그는 리필 잉크 카트리지 개발 5년만에 세계시장을 석권해 가고 있다. 불황기에 호황을 구가하고 있는 정광춘 사장의 경험담은 컴퓨터산업에 대한 접근법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봉이 김선달이 대동강물을 팔아 돈을 번 것처럼 잉크를 팔아 IMF도 아랑곳없이 매월 신기록을 경신해 나가며 ‘표정관리를 해야만 하는’ 사람이 있다. 잉크 벤처기업 잉크테크 정광춘 사장(46)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지난해 11월 2억5천만원이던 매출이 IMF 바람을 탄 12월에 사상 최초로 5억원을 돌파한 데 이어, 1월 5억5천만원, 2월 7억원, 3월 9억원이 넘는 등 신기록 경신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그 결과 5월 결산을 한달 남겨두고 98년 목표를 당초 50억원에서 60억원으로 수정했다. 게다가 지난 2월에는 총 23만달러를 주문받아 놓고도 겨우 10만달러어치만 선적을 하는 등 주문 물량의 5분의1만 만들다 보니 항간에 ‘부도가 났다’는 루머까지 나돌게 됐다. 도대체 어떤 잉크길래 대기업들도 몸살을 앓는 IMF 시절에 물건을 못댈 정도로 호황을 누려 사장이 표정관리까지 신경을 써야 하는지 궁금하다. 해답은 역시 기술에 있었다. 잉크테크는 IMF 때문에 부각된 언어 중에 하나인 ‘리필’(Refill)에 관련된 잉크기술을 가지고 있다. 리필 잉크란 말 그대로 잉크를 재충전해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흔히 가정주부들이 세탁세제나 샴푸 등을 구입할 때 박스로 된 제품이 아닌 종이팩에 든 내용물만을 사서 채워 쓰는 것과 같다. 잉크테크의 리필잉크는 요즘 PC 다음으로 구입 선호도가 높은 잉크젯프린터에 사용된다. 잉크젯프린터는 미세한 노즐로 잉크를 분사해 문자나 도형을 그리는 비충격식 프린터. 컬러 출력이 가능한 20만원대 제품이 나와 있어 문서작성 위주의 사용자들에게는 필수품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중이다. “프린터 가격은 점점 싸지는 데 반해 소모품 가격은 비싼 게 현실이다. 잉크 카트리지 및 잉크의 가격은 4~10만원 수준이라 1년에 1대의 프린터를 유지하려면 프린터 1대 값만큼 돈이 든다. 하지만 잉크테크에서는 국내외 거의 모든 프린터에 리필해 사용할 수 있는 잉크를 불과 1만원에 내놓았다. 게다가 품질까지 좋다면 어떤 걸 선택하겠는가? 그것도 IMF 시절에” 정사장의 말대로 잉크테크의 리필잉크는 프린터업계의 충격이었다.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 프린터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휴렛팩커드(이하 HP)와 엡손, 캐논은 ‘프린터는 싸게, 소모품은 비싸게’ 정책을 펼쳤다. 프린터를 일단 싸게 팔아 보급시켜 놓고 지속적으로 드는 소모품 비용으로 이익을 챙기겠다는 의도이다. 하지만 리필잉크의 등장으로 이들 업체는 다시 주판알을 튕기게 됐다. 5월 현재 리필잉크와 대체 카트리지시장의 80퍼센트, 총 잉크와 카트리지시장의 15퍼센트를 잉크테크가 차지하게 된 것이다. 설립한 지 6년간의 성과로는 엄청나다. 이런 성과에는 기존 프린터업체의 15퍼센트 수준으로 공급되는 파격적인 제품 가격이 주효했지만, 품질도 이에 못지 않았다. 잉크테크의 기술력은 지난 93년 10월 과학기술처로부터 잉크젯프린터용 잉크 염료합성과 잉크 제조기술에 대한 신기술(KT) 마크 획득과 96년 5월 장영실상 수상으로 입증된 바 있다. 또한 미국 BLI 테스트 기관에서도 품질을 인증받았고 까다롭기로 소문난 미국 암웨이사에서 98년 정식으로 납품을 체결하는 등 세계 35개국에 수출하고 있다. “최근 파나마의 한 소모품 수입업체가 우리 제품을 수입하고 싶다며 제품 박스를 KOTRA에 보내와 연락처를 문의할 정도로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고 자랑하는 정사장이지만 그에겐 사업 초창기 이름없는 중소기업이 만들었다는 점만으로 평가 절하당한 기억을 지울 수 없다. 정사장은 한국과학기술원에서 고분자를 전공한 이학박사. 그는 30대 초반 모 기업에서 제시한 이사대우 자리를 뿌리치고 잉크테크의 전신이 된 진명화학을 설립, 일명 화이트라고 불리는 수정액을 만들었다. 당시 독일 제품인 ‘펠리칸’이 독점하다시피 한 시장에 뛰어든 ‘자수정’이라는 진명화학의 국산품은 완전 케이오패 당했다. 주요 고객층인 여사무원들이 외제를 선호했던 것이다. 오히려 문구점에서 이름을 외제처럼 바꾸면 성공할 것이라고 요청해 올 정도로 품질은 뛰어났으나 ‘우리 것도 기술이 뛰어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정사장은 이를 무시했다. 결국 빚만 남았고, 이를 갚고자 중소기업 상대로 화학제품 개발을 대신해 줬다. 한번의 실패가 성공의 힘이 됐다 “개발만 해서 생활이 될 수 있다면 그렇게 살았을 것이다. 국내 연구기관들은 대개 정부출연 또는 대기업, 학교가 운영하고 있어 중소기업들이 연구를 의뢰하기에는 문턱이 너무 높다. 학위 취득 후 대기업에 입사하지 않은 것도 중소기업 대상의 연구소를 만들고 싶었는데, 사람들이 ‘연구’에 대한 인식이 너무 없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부탁해 놓고 술 한번 사주면 되는 걸로 착각한다.” 정사장이 연구소에 대한 꿈을 접고 자수정의 실패를 거울삼아 다시 사업전선에 나서게 된 데는 91년 HP가 국내에 소개한 잉크젯프린터가 계기가 됐다. 백만원 수준의 잉크젯프린터가 도트프린터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까 의문시되던 보급 초기, 정사장은 ‘사업을 하려면 남들보다 먼저 시작해야 성공한다’고 생각했고 ‘잉크’는 자신의 전공분야였기 때문에 자신있었다. 1년에도 몇번씩 바뀌는 가전제품에 비해 프린터는 한 모델이 나오면 3~4년은 사용되는 제품 사이클도 유리하게 작용했다. 잉크 개발 후 판로를 확보하기 위해 국내 프린터업체인 큐닉스와 손을 잡았다. 캐논과 라이선스를 맺고 있던 큐닉스는 다른 제품을 사용함으로써 발생하는 고장에 대해 캐논이 애프터서비스를 안해 줄 수 있다는 위험부담을 안으면서 잉크테크와 협력한 것이다. 정사장은 큐닉스의 이런 위험한 결정에 아직까지 고마워하면서도 “소모품 비용이 적게 든다는 것도 일종의 프린터 마케팅 방법이다. 큐닉스로서는 경쟁사인 삼보와 비교해 소모품 가격이 싸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을 것이다”며 큐닉스 매출에 작으나마 잉크테크가 기여한 것도 사실이라고 말한다. 잉크테크의 가격경쟁력은 기본원료부터 완제품까지 모두 처리할 수 있는 기술력에서 나온다. 현재는 LG가 리필잉크를 만들어 내고 삼성도 연구하고 있지만 한동안 한솔화학·모나미 등 많은 업체에서 도전했다가 도중하차한 것도 정사장 스스로가 기술개발에 참여하고 종업원 70명 중 화학전공자가 반이나 되는 잉크테크를 당해 낼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주문 물량의 20퍼센트밖에 제작하지 않는 것도 ‘품질’이 생명인 잉크테크의 위상을 흔들리지 않게 하기 위한 인위적 억제책 때문이다. 카트리지의 경우 공정과정 중 수작업이 필요하다. 매출 제일주위로 주문대로 제품을 만들다 보면 분명 불량률이 늘어날 것이고, 비싼 자동차를 판매하는 회사도 아닌 1만원대의 소모품을 만드는 잉크테크로서 품질이 떨어진다는 것은 곧 낭떠러지로 떨어짐을 뜻한다. “숙련자가 아니면 품질에 문제가 생기는 수작업 때문에 주문이 는다고 생산설비만 늘릴 수 없다. 제품이 달리다 보니 ‘부도가 났다’는 말까지 들려 속상할 때도 있지만, 계속적인 기술개발과 뛰어난 품질만이 벤처기업인 잉크테크가 살 길이다. IMF 시절에 매월 1백퍼센트 신장률을 기록하는 것도 어려운 시절 절약 차원에서 값싼 리필잉크를 선택했다가 품질도 좋으니 계속 구입하게 된 때문”이라고 정사장은 말한다. 이선희 <월간 PC 라인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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